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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뉴스

(신간) 신경과 전범석 교수의 전신마비 극복기 '나는 서있다'

조회수 : 16113 작성일 : 2009-11-03

(신간) 신경과 전범석 교수의 전신마비 극복기 '나는 서있다'
- 아홉 달 간의 치열한 투병 끝에 다시 일어서기까지

책표지  
자신의 분야에 국내 최고라 불리는 의사가 있었다. 미국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교수의 지도 아래 연수를 마쳤고, 외국인 과학자에게 쉽사리 허락되지 않는 연구 기회가 주어졌으나 사양한 것은 그에게 더욱 소중한 고국이 있고 그를 기다리는 부모님이 계신 까닭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의 신경과 교수가 된 그는 1993년 같은 병원 신경외과 김현집 교수팀과 함께 태아의 뇌세포를 파킨슨환자의 뇌에 이식하는 수술을 국내 처음으로 성공하고, 2000년 이후에만 10여 개 이상의 재단에서 연구비를 지원받는 등 주목받는 의학자로서 왕성한 활동을 해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계에서 돌연 그의 이름이 사라진다. 주말이면 즐겨 오르던 남한산성 정상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졸도로 쓰러져 전신마비가 된 것이다. 사고 직후 의식이 돌아온 순간부터 그는 팔다리를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자신의 상태를 냉철하게 진단하고, 남다른 정신력과 의학적 지식으로 주치의와 협력하여 스스로 진단하고 처치해 나간다. 오직 다시 서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던 그가 아홉 달 간의 투병 일기를 한 권의 책으로 출간하였다. 『나는 서 있다』(부제 :기나긴 싸움 그리고 기적에 관하여, 예담 펴냄)는 서울대학교병원 신경과 전범석 교수가 불의의 사고 직후,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투병의 나날을 구술하여 남긴 일기이다. 국내 최고의 신경과의가 자신의 전공 분야인 신경마비 증세로 꼼짝없이 병상에 누운 처지가 되어 남긴 병상의 기록.

  눈물이나 억지 감동은 없다. 환자가 쓴 투병기라기보다는 담당의가 쓴 진료 기록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정도로 치료와 회복의 과정을 철저하게 객관적인 시각에서 추적하는 까닭이다. 몸은 마비되었지만 이성의 마비는 허락지 않는다. 스스로 짐승에 비유할 정도로 살아남겠다는 무서운 집념과 생존본능 그리고 환자인 동시에 의사로서 자기 자신을 냉철하게 진단하고 끊임없이 분석하는 고도의 지성은 읽는 이에게 슬픔이나 연민이 아닌 전율과 섬뜩함마저 안겨준다.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고통과 절망의 상황을 차가운 이성과 강렬한 의지로 압도하는 경이로운 정신력을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저자의 절친한 친구이자 서울대학교병원 동료 의사인 이왕재 교수는 병상에 누운 전범석 박사에게서 전형적인 사지 마비 환자의 모습을 보고 탄식한다. ‘하필이면 우리나라 최고의 신경과 의사에게 사지 마비라는 기막힌 사고가 발생하다니!’ 환자들의 신경을 치료해주던 명의가 이제 스스로의 신경마비와 싸워야 하는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무력하고 겁에 질린 환자로 남아 있기를 거부한다. 남한산성 정상에서 쓰러진 직후, 그는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스스로의 상태를 파악하고 척추손상의 대가답게 주변의 당황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해 목을 보호하도록 조치하였으며, 헬기를 요청하여 신속한 응급처치를 받을 수 있도록 상황을 주도해 나갔다. 또한 자신의 병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흡인성 폐렴과 욕창 등 생길 수 있는 모든 합병증을 예상하고 적극적으로 예방하고 피해갈 수 있었다.

  물론 그는 입원 기간이 길어질수록 자신의 마비 증세와 기대에 못 미치는 더딘 회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의사로서 스스로를 진단할 때마다 우울한 통계 수치가 떠올랐지만 희망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저자는 이를 악물고 다짐한다. 자신이 아는 모든 의학적 지식을 총동원하고 최선을 다하여 이 구덩이에서 빠져나가고 말겠다고. 그에게 중요한 것은 두려움과 분노, 자기연민이 아니었다. 그는 매 순간 날카로운 지성과 의사로서의 차가운 이성으로 상황을 반전시켜 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두 발로 일어선다.

  그는 기적에 대하여 생각한다. 누구보다도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운동으로 몸을 다졌던 그가 갑작스럽게 쓰러져 사지 마비가 된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가파른 경사로도 아니고 내리막길도 아닌 정상에서 넘어졌다는 것은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넘어질 때는 손으로 땅을 짚거나 팔을 뻗어 몸을 보호하는 것이 보통인데 그가 쓰러지는 현장을 목격한 사람은 마치 통나무가 쓰러지듯 했다고 회상한다.

  그가 당한 척수손상은 호흡 마비를 유발할 수 있었는데 호흡이 마비되지 않았던 것도 기적이요, 사고를 당한 본인이 척수손상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것 또한 기적이며 넘어질 때 땅바닥에 머리를 부딪치면서 뇌 손상을 받지 않은 것이 기적이었다.

  땅바닥에 고꾸라진 그가 정신이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청동색 조약돌 두 개였다. 순간적으로 저자는 그것이 자신을 친 하나님의 도끼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견디기 어려운 고통 속에서 치열한 재활훈련을 하는 동안 그는 기도한다. 신이 나를 쳤다고 생각하게 하지 말고 내 손을 잡아 이끄신다 여기게 해 달라고. 그는 자신이 처한 불행에 수동적으로 적응하거나 위안을 찾는 대신 심한 부상에서 기적적으로 목숨을 구하고, 고난의 의미를 찾기보다는 고통을 이겨낼 방법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으며 힘든 생활을 이어가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자문하였다.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몸으로 일상으로 복귀하였기에 놀기에는 불편하고 일을 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 보니 오히려 일 처리는 전보다 빨라졌다. 복귀 후 우수연구교수상, 우수강의교수상을 받고 의료정책실장, 학회 이사를 겸임하는 등 열정적으로 의학연구에 정진하는 그의 삶은 많은 환자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있다.

  저자는 신경계질환 환자가 겪는 거의 모든 고통을 직접 겪어 보았고 현재까지도 그 고통은 지속되고 있다. 마비로 인해 걷지 못하고 먹지 못하고 입지 못하고 씻지 못하는 불편, 대소변을 받아내야 하는 수치와 어려움, 견딜 수 없는 통증과 죽음과의 대면….

  절망적인 상황에서 기적적으로 회복되어 일상에 복귀하고, 다시 의사의 신분으로 돌아가 진료를 시작한 현재까지도 그의 신체적 움직임은 여전히 자유롭지가 않다. 운동을 지속적으로 하지 않으면 근력이 없어지고 몸이 굳어 불편해지는데, 운동 또한 쉽지 않으니 저자는 자신의 처지를 ‘계속 밟지 않으면 물속으로 빠질 물방아에 오른 처지’, ‘무간지옥’에 비유한다.

  그러나 저자는 오히려 환자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을 감사하게 여긴다.  저자는 자신이 겪은 육신의 고통으로 인하여 좀 더 환자의 고통을 이해하는 따뜻한 의사, 그리고 이를 가르치는 교육자가 될 것을 다짐하고 있다. 그러한 목표가 있기에 환자와 가족들을 위한 파킨슨병 안내서를 개정하였고 환자 가족 수기도 번역하여 환자와 가족, 의사와 학생들에게 권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이 달콤한 승리의 기록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 글은 아직도 진행 중인 투병 기록이며, 아직 시련 속에 있거나 고난이 끝나지 않을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한 글이다. 같은 어려움에 처한 환자와 가족들에게 도움을 주고 이들을 돌보는 사람들에게 참고가 되는 것이 이 책을 쓴 저자의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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