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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맞춤형 치료로 환자 편의 높여

디지털치료제(Digital Therapeutics)는 먹는 알약이나 주사 대신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질병을 예방·관리·치료하는 기술이다. 스마트폰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이하 앱)이나 웹 기반 플랫폼, 가상현실(Virtual Reality, VR) 등을 활용해 환자들에게 맞춤형 치료를 제공한다. 핵심은 행동 수정 프로그램과 데이터 기반 치료 방식으로, 인지행동치료(CBT)를 지원하는 앱이나 중독 치료를 돕는 프로그램을 꼽을 수 있다. 디지털치료제는 특히 일상생활에서 건강을 예방하고 관리할 수 있다는 장점에 힘입어 수요가 점차 커지고 있다. 고령화로 인한 만성질환이 증가하면서 병원 바깥에서도 일상생활에서도 건강을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에 대한 높아진 요구 때문이다. 세계 최대 정보기술 전시회인 CES에서도 2020년 이후 3년 연속으로 핵심 기술 키워드에 선정되었을 정도다. 지난 7월 한국보건사업진흥원이 발표한 ‘글로벌 보건산업 동향’에서는 2032년까지 디지털치료제 시장이 약 143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이렇듯 바이오산업 중에서도 ‘블루오션’인 디지털치료제를 가장 먼저 만든 것은 미국이다. 2010년 당뇨병 관리업체가 제2형 당뇨병 관리 모바일 앱을 시판하며 디지털치료제(Digital Therapeutics)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2017년 8월에는 역시 미국 기업이 개발한 약물 중독 치료용 모바일 앱이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최초로 받았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해 아직까지 글로벌 디지털치료제 시장을 확고히 선점한 국가는 없다. 디지털치료제 시장이 아직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2022년 이후 식약처 허가를 받은 디지털치료제들이 빠르게 등장하며 성장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있다. 현재까지는 불면증 인지개선 치료제인 솜즈와 웰트아이, 뇌졸중 환자 시야장애 개선 치료제 비비드브레인, 호흡재활 운동 치료제 이지브리드 등 총 4종이 허가를 받았지만, 향후 더 빨리 늘어날 것은 불을 보듯 자명하다.

6개월 만에 효과 증명한국내 1호 디지털치료제 솜즈

국내 디지털치료제의 출발은 서울대학교병원이 만성 불면증 환자들에게 정식 처방한 ‘솜즈’다. 서울대학교병원과 삼성서울병원, 고대안암병원이 헬스케어 전문기업과 협업해 만든 솜즈는 만성 불면증 환자를 위한 표준치료법인 불면증 인지행동치료법(CBT-I)을 모바일 앱으로 구현했다. 2022년 2월 국내 최초로 식약처의 승인을 받은 이후 진행된 임상시험을 통해 불면증 심각도를 효과적으로 낮추고 수면효율을 높이면서 치료제로서 가능성을 입증했다. 솜즈를 처방받은 만성 불면증 환자는 6주 동안 솜즈 앱을 통해 매일 수면일기를 쓰고 주간 수면효율에 따라 맞춤형 수면시간(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을 처방받아 수면 효율을 높이는 치료를 받는다. 앱을 통해 건강한 수면 습관 교육, 이완요법, 수면에 대한 잘못된 생각 교정(인지치료) 등도 병행하게 된다.

처음으로 솜즈를 처방한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유진 교수는 “이전까지 불면증 환자는 인지행동치료를 위해 매주 병원을 방문해야 했지만 솜즈 처방으로 접근성 문제가 해결됐다”라고 설명했다. 이유진 교수는 공동연구팀과 함께 지난 7월, 솜즈 모바일앱 기반 불면증 인지행동치료 효과도 밝혔다. 서울대학교병원과 삼성서울병원, 고려대학교안암병원에서 모집된 총 98명의 참여자(솜즈군 49명과 대조군 49명)를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한 결과 솜즈군의 불면증 심각도 지수(ISI)가 유의미하게 낮아졌다는 것이다. 솜즈군은 이외에 수면 효율과 정신 건강 지표 등에서도 우수한 결과를 보였다. 특히 솜즈군의 치료 중 중도 탈락률은 12.2%로, 최대 40%인 대면 불면증 인지행동치료의 탈락률보다 낮아, 솜즈와 같은 비대면 디지털치료제의 효용성도 함께 증명했다.

자폐 디지털치료제에 이목 집중돼

‘자폐스펙트럼장애 이상행동 및 문제행동 디지털치료제 개발’ 연구 결과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 자폐스펙트럼장애는 아동의 약 1~2%에서 발병하는 신경발달장애로, 치료와 돌봄에 어려움이 많다. 이상·문제행동을 교정하기 위해 장기적으로 약물치료를 할 경우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이 높고, ABA(Applied Behavior Analysis, 응용행동분석) 기반 인지행동치료는 비용 부담이 크다. 치료할 수 있는 기관이 많지 않다는 것도 문제다. 서울대학교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김붕년 교수팀이 2022년, ‘자폐 디지털치료제 개발’ 연구에 착수한 이유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주관으로 약 4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한 이번 연구 목표는 ▲ 감각이상 및 집착을 완화하는 XR 기반 신체활동 촉진 치료제 ▲ 시공간 통합 능력 및 실행 기능 향상하는 스마트토이 활용 치료제 ▲행동 억제력 결합 및 상동적 행동 집착을 완화하는 모바일게임 기반 인지행동 치료제 등을 개발하는 것이다. SK텔레콤, 옴니CNS, 에코인사이트, 크리모, 돌봄드림, 이모티브, 에어패스, 동국대학교 인공지능융합연구소 등 각 분야 전문가도 함께했다. 연구 책임자인 김붕년 교수는 “새로 개발할 디지털치료제가 약물 및 행동치료 모델을 보완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