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최주연

사진. 황필주 79 Studio

후원을 통해 치유한 젊은 날의 상처

2023년 11월 1일 넥슨어린이통합케어센터(이하 도토리하우스)의 오픈 소식에 노성단 후원인은 그 누구보다 기뻐했다. 2023년 10월에 기부한 도토리하우스 운영 기금 4천만원이 아픈 아이들과 보호자들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보람 덕분이었다. 그 보람으로 노성단 후원인은 2024년 5월, 다시 도토리하우스 운영 기금 5천만 원을 후원했다. 2023년 1월 어린이 환자를 위해 기부한 1천만 원을 포함하면 서울대학교어린이병원 후원액은 총 1억 원에 이른다. 하지만 푸르메재단을 비롯한 다양한 후원처에 힘을 보태온 것에 비하면 서울대학교어린이병원 후원은 다소 늦은 편이었다. 아픈 기억을 누그러뜨리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젊을 때 아이를 하나 놓쳤어요. 돌이 막 지난 아이가 입술이랑 손톱이 다 파래졌길래 서울대학교병원에 데리고 왔더니 심장 판막증이라고 하더군요. 그때만 해도 고치기 힘든 병이어서 치료를 하고도 떠나 보내야 했어요. 가슴이 아팠지만 4남매를 낳고 기르느라 어린이병원 후원은 생각할 겨를이나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장성한 후 생각하니 잃은 아이에게 너무 미안한 거예요. 더 늦기 전에, 내 사고가 분명할 때 그 아이를 위해서라도 후원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저는 아픈 아이를 둔 엄마들의 마음을 알잖아요.” 앓는 아이 곁을 꼬박 지키느라 화장실조차 마음 놓고 가기 힘든 날들이었다. 그런 노성단 후원인에게 어린이병원과 도토리하우스 후원은 아픈 아이를 둔 엄마들을 향한 응원인 동시에 오랜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덜어내는 일이었다. 마침 이사하던 시점이었기에 노성단 후원인은 생활의 규모를 줄여후원금을 마련했고, 고인이 된 남편과 자신의 이름으로 서울대학교어린이병원 후원을 시작했다.

경제적으로 보면 저는 딱 중간이에요. 그러니까 제 힘으로 할 수 있는 건 하고, 더 큰 자원이 필요할 때는 더 많이 가진 사람들의 힘을 빌리곤 했어요. 그렇게 부자들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사이에서 심부름 할 수 있는 능력에 참 감사해요.

더 후미지고 낮은 곳으로 향하는 마음

노성단 후원인의 후원은 언제나 가진 것을 덜고 쪼개는 것에 출발했다. 그러니 노년에 이르러 수익이 들어올 곳이 없는 지금은 더더욱 모든 것을 줄여 후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젊은 시절부터 아껴 듣던 오디오와 재봉틀은 수도원과 수녀원으로, 집에 걸어두고 보던 화가의 대작은 한 의료기관으로 보냈다.

“음악은 스마트폰으로 들으면 되고, 그림은 잘 관리해줄 곳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으니 더 의미있죠. 평생 아껴온 물건들이지만 아쉽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다 누리지 않아도 사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어요. 좋은 걸 생각하기 시작하면 후원이나 봉사를 못해요. 하지만 다 덜어내고 나면 말로 표현할 수 없게 홀가분해 집니다.”
다음으로 그는 꼭 필요하지 않은 일에 대한 관심을 접었다. 마루가 갈라지거나 벽지에 얼룩이 생겨도 견딜 만하면 굳이 돈을 들여 고치지 않는다. 올 여름 대단한 더위 중에도 에어컨보다는 선풍기 신세를 더 많이 졌다. 거창한 결심을 한 것도 아닌데 그냥 접어지고 견뎌졌다는 것이다. 이렇게 아낀 돈을 모아 곳곳의 후원처로 보내왔지만, 그는 몸을 움직여 하는 봉사에도 진심을 다해왔다. 체력이 좋았던 시절, 매주 한 차례 가방에 고무장갑을 숨겨 봉사활동을 다녔던 것이 대표적이다. 정부나 익히 알려진 봉사단체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노숙인들을 찾아 식사와 설거지 봉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저는 항상 더 배고픈 사람, 더 힘든 사람, 아무도 돌보지 않는 곳을 돕고 싶어요. 이미 알려진 곳을 도울 사람은 너무 많잖아요. 그런데 제가 다녔던 곳들은 도와줄 사람도 후원해주는 사람도 전혀 없었어요. 그러니 어쩌겠어요. 저라도 해야죠.”
노년에 이른 요즘은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기에 바쁘다. 특히 버려진 자투리천을 모아 손바느질로 무릎 담요를 만들어 주일학교에 보낸 일을 이야기하면서 노성단 후원인은 인터뷰 중 처음으로 자랑을 늘어 놓았다.

나이가 있으니 최소한의 병원비 같은 건 마련해 두어야겠죠.하지만 나머지 인생은 아직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하고 싶은 걸 하는 거죠. 나한테는 그게 좋은 옷을 입고 편하게 사는 게 아니라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에요.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며 익힌 나눔의 가치

“제 어머니를 보고 배운 것 같아요. 자식 여럿을 키우면서도 배고픈 사람들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으셨어요. 주기적으로 시골학교에 학용품을 사다주셨고요. 우리 집이 잘 사는것도 아니고 어머니가 유명한 사람도 아닌데 어떻게 저렇게 좋은 일을 많이 하시나 싶었죠. 그런데 그 모습을 보고 자란 덕분에 가진 게 많지 않아도 나눌 수 있다는 걸 자연스럽게 익혔습니다.”

어머니가 롤 모델이라면 막내딸 서연희 씨는 노성단 후원인을 각성시키는 존재다. 중고 거래로 얻은 수익을 저금통에 모았다 기부하고, 시골에서 보내온 자기 몫의 쌀을 노숙자 급식소에 가져다 두는 등 서연희 씨는 자신은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는 것이다. 딸에게 “니가 내놓은 것들은 실제보다 열 배, 백 배 이상의 가치가 있어”라고 자주 말하는 이유다. 하지만 가진 것을 쪼개고 나누며 후원에 힘쓰고 있으니 노성단 후원인과 어머니 그리고 서연희씨 까지 3대는 꼭 닮아 있다.

귀한 후원금이 어떻게 쓰이기를 바라느냐는 질문에도 노성단 후원인은 그런 건 없다며 손사레부터 쳤다. 후원을 통해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었으니 충분하고, 서울대학교어린이병원과 도토리하우스의 좋은 취지를 실천하는 데 보탬이 되면 그뿐이라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노성단 후원인은 더 나이가 들어 생각이 흐트러지기 전까지는 나눔을 지속하겠다며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