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료 이끌 아이디어 경연의 장

네이버는 지난해 7월, 서울대학교병원에 디지털 바이오 분야 연구지원기금 300억 원을 3년간 기부할 것을 약정했다. 서울대학교병원 기부 사상 단일 연구 지원기금 기부액 중 가장 큰 규모다. 특별한 조건을 내걸지 않고 서울대학교병원의 연구 역량과 가능성을 보고 미래의료에 대한 투자를 결정한 것이다.

서울대학교병원은 곧바로 ‘네이버 디지털 바이오 연구공모’에 착수했다. 서울대학교병원그룹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소속된 모든 이들 즉, 학부생부터 교수까지 누구나 참여할 수 있게 했고, 범위 역시 디지털 의료·의생명 바이오·의료기기 등 의학 연구 전반으로 넓혔다. 대신 새롭고 독창적인 연구·지식재산권이나 사업화를 목표로 하는 연구·다학제 연구 등을 우선 선정하겠다고 강조했다. 우수한 의사과학자를 양성하고 연구 성과를 높이는 시너지 효과를 창출해 ‘연구-임상-사업화’의 선순환 생태계를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이를 위해 운영위원회에서는 분야별로 최고 수준의 역량을 갖춘 심사위원을 8명씩 섭외하고 1차 서면 평가(블라인드), 2차 구두 평가로 평가 단계를 설계했다. 평가 과정에서는 특히 발전 가능성을 중심에 두고 정량적 평가와 함께 정성적 평가를 아울렀다. 그 결과 교수부터 학부생까지 다양한 이들의 연구과제가 선정되어 미래의료를 향한 서울대학교병원그룹의 의지를 확인케 했다.

환자 삶의 질 향상과 국가 경쟁력 확대를 위한 길

심사위원단장을 맡은 최승홍 서울대학교병원 영상의학과 교수는 “이번 연구공모를 통해 서울대학교병원그룹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소속 교수들의 연구 목록과 연구 열기를 확인했다”라는 말부터 했다. 그만큼 많은 이들이 참여했다는 뜻이다. 최승홍 교수가 파악한 연구 흐름과 연구공모의 의의에 대해 들어 보았다.

이번 연구공모는 기존 프로젝트와 어떤 점이 달랐나요?

첫째, 블라인드 평가로 공정성을 높였고 둘째, 2장 정도의 연구제안서로 ‘아이디어’ 자체에 초점을 맞춰 평가했습니다. 셋째, 서울대학교병원그룹 내 교수진부터 대학원생·전임의·전공의 그리고 학부생까지 신청 자격의 폭을 넓혔습니다. 연간 지원액인 100억 원 이내에서 연구자가 자유롭게 연구비를 책정할 수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말 그대로 누구나 연구책임자가 될 수 있는 열린 연구공모를 설계해 진행한 것입니다.

‘열린’ 공모전인 만큼 반응이 아주 뜨거웠을 듯합니다.

서울대학교병원 본원과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 등 서울대학교병원그룹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소속된 거의 모든 교수가 참여했습니다. 연구책임자를 기준으로 1인당 1개의 연구과제만 제출할 수 있었는데 교수직이 385명, 임상강사·대학원생·학부생이 51명으로 총 436명이 지원했습니다.

예비연구(Pilot Study) 제도 운영 배경도 궁금합니다.

6개월에서 1년 동안 3천만 원에서 최대 1억 원까지 초기 비용을 지원하고 중간 평가를 통해 본 과제 진행 여부를 심사하는 것인데요. 최종 점수는 조금 부족하지만 그냥 떨어뜨리기 아까운 과제에 대해 기회를 줬다는 데에 의의가 있습니다.

접수된 연구과제에서 어떤 흐름을 포착하셨나요?

의료기기 개발과 인공지능 및 빅데이터, 디지털 헬스케어 순으로 연구제안서가 접수되었습니다. 연구에서 끝나는 연구가 아니라 지식재산권 창출이나 사업화를 염두에 둔 연구에 관심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었죠. 인공지능이나 빅데이터를 비롯한 첨단 IT 기술에 대한 연구자들의 관심과 역량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설명드리면 자칫 기초의학에 대한 열기는 덜한 것으로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분야가 나뉘어져 있었을 뿐, 기초의학 및 기전 연구는 물론이고 치료제 및 약물전달 시스템 개발이나 유전체 및 오믹스 연구 등도 큰 갈래에서는 모두 기초의학 연구와 관계가 깊기 때문입니다.

연구자 본인이 지식재산권을 갖고 창업을 하는 일이 왜 중요한가요?

기반 기술을 기업에 이전하는 방법도 있지만 연구자가 직접 상용화를 주도했을 때만큼의 성과를 거두기는 힘듭니다. 기술에 대한 이해도나 기술 개선 의지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특히 임상의사인 연구자는 환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에 가장 집중하고, 좀 더 나은 효과를 위해 장기적으로 연구를 이어갑니다. 과정이 쉽지는 않습니다. 창업 2년 차에 접어든 저 역시 아침 7시에 출근해서 밤 10시 넘어 퇴근하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진료실에서 만나는 환자뿐 아니라 더 많은 환자를 위한 연구로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는 사명감, 기술 상용화에서 얻은 수익을 다시 연구에 투자하거나 젊은 연구자를 지원하겠다는 각오로 연구에 더욱 매진하고 있습니다.

서울대학교병원그룹이 이번 연구공모를 통해 미래의료 개척에 어떻게 기여하기를 기대하시나요?

서울대학교병원그룹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하는 연구자가 많다는 것을 새삼 확인했습니다. 덕분에 이번 연구공모를 계기로 서울대학교병원이 미래의료뿐만 아니라 국가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죠. 바이오산업을 포함한 미래의료는 반도체나 인공지능만큼이나 큰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입니다.

고통과 감염 걱정 없는
내시경이 온다

통증 유발 없는 유연 성장형 로봇내시경 개발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소화기내과 김재환 교수팀

2020년 기준, 국내 암 발생률 3위인 대장암을 포함해 대장 질환의 진단 및 치료를 위한 대장내시경 검사 건수는 연간 220만 건에 달합니다. 하지만 대장내시경은 위내시경에 비해 시술 난이도가 높고 장 천공 합병증이 발생(0.1%)할 위험이 있습니다. 검사받는 환자의 고통도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장 검사에서도 최근 캡슐 내시경을 사용하기도 하 지만 캡슐 내시경으로는 조직 검사나 치료를 할 수 없습니다. 한편 소장은 입이나 항문 양쪽 모두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어 기존 내시경으로는 접근하기 어렵습니다. 풍선 보조 소장내시경은 검사 시간이 길고 시술 난이도가 높다는 단점이 있고요.

이러한 배경 탓에 새로운 개념의 내시경이 필요하기에, 저희는 재난이나 환경 분야에 사용하기 위해 개발된 로봇 기술을 대장과 소장 내시경에 접목할 것을 구상했습니다. 유연 성장형 로봇내시경은 쉽게 말해, 삽입 전에는 소형이었다가 체내에서 유연하게 확장하는 형태입니다. 세계적으로는 몇몇 연구자 그룹이 연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완성된 기술도 아니고 실제 사용된 사례가 없으니 갈 길이 멀 것으로 예상됩니다. 하지만 전세계 다른 경쟁 그룹에 비해 저희 팀은 상대적으로 앞서 있습니다. 현재 대형 동물의 대장을 대상으로 전 임상 실험을 진행하고 있을 정도니까요.

1차 연도에 대장 로봇내시경 시작품을 시작으로 2차 연도에는 소장 로봇내시경을, 3차 연도에는 임상 시험 지원 요건을 충족하는 로봇내시경 개발을 완료할 계획입니다.

이 모든 과정을 거쳐 개발에 성공할 경우, 환자분들에게 내시경 검사 과정의 고통과 합병증 발생 위험을 현저히 줄여드릴 수 있으며,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제작할 수 있는 만큼 1회용 내시경을 통한 감염 전파 방지에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경제적·산업적 측면의 이익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내시경 분야는 의료기기 분야 중 7번째로 큰 분야인데, 현재는 일본계 3사가 글로벌 시장의 절반가량을 점유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임상 의료 영역을 선도하고 있는 것과 달리 산업 분야의 성과는 미미한 실정입니다. 하지만 저희의 연구가 제품 상용화로 이어진다면, 내시경 분야의 글로벌 판도를 바꾸며 국가 경제에도 보탬이 될 것입니다. 그런 만큼 이번 연구과제 선정을 계기로 반드시 가시적인 성과를 만들겠습니다. 더 많은 환자 삶의 질 개선에 이바지하고 대한민국 의료의 높은 수준을 다시 한번 전 세계에 널리 알리겠습니다.

단일 세포 연구로
정밀의료 및 맞춤형 치료에 기여한다

파운데이션 모델을 이용한 단일세포 인공지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김종일 교수팀

많은 질병은 우리 몸을 이루는 세포의 기능 이상으로 인해서 발생합니다. 다시 말해서 질병의 근본 원인을 파고 들어가려면 어떤 세포가 어떻게 잘못되어 있는가를 알아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단일세포 유전체 연구가 활성화되기 이전까지는 우리 몸에 얼마나 다양한 세포 종류가 있는지도 잘 몰랐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단일세포 유전체 연구를 통해서 계속 새로운 세포 종류가 밝혀지고 있습니다. 단일세포 연구에서 가장 큰 컨소시엄 연구인 인간 세포 지도(Human Cell Atlas) 연구팀이 자신들의 연구에 대해 ‘인간 세포의 주기율표를 새롭게 만드는 작업’이라고 설명할 정도입니다.

이처럼 단일세포 연구는 아직 생명과학의 기초 연구에 가깝지만 최근 들어 질병에 응용하는 연구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질병의 원인이 되는 희귀 세포군을 찾아내거나 특정 약물이 어떤 세포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가를 예측해서 신약 개발에 활용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관련 연구가 활성화되려면 더 많은 임상 연구자들이 환자 샘플을 이용한 단일세포 연구를 해야 하는데, 높은 비용과 데이터 분석의 어려움이 걸림돌이 됩니다.

이런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저는 1) 최소한의 데이터로 2) 쉽고 3) 빠르고 4) 정확한 학습을 가능케 하는 파운데이션 모델의 장점에 주목했습니다. 그 결과, ‘파운데이션 모델을 이용한 단일세포 인공지능’이라는 연구방향을 설정하고 기초의학과 임상의학, 데이터 공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를 모았습니다. 그 과정을 거쳐 탄생할 인공지능 플랫폼은 더 많은 연구자가 쉽게 단일세포 연구에 참여할 수 있게 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질병의 타겟 세포 확인, 병태 생리 기전 규명과 같은 연구 성과가 축적되면 신약개발, 질병 정밀진단이나 맞춤 치료제 선정에 단일세포 분석이 직접적으로 활용되는 시기도 빨라질 것입니다. 앞으로 서울대학교병원이 생화학과 유전학, 생명정보학은 물론 첨단 IT 기술의 언어를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는 의사과학자를 더 많이 배출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연구에 임하겠습니다.

전 세계 12억 명의 데이터를
하나의 언어로!

표준화 멀티모달 데이터 기반
의료 인공지능 검증 다기관 연합 네트워크 구축

서울대학교병원 영상의학과 윤순호 교수팀

최근 영상의학 분야는 물론 병리학과 생체신호 분야에서도 비정형 의료영상 데이터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비정형 의료영상 데이터는 본질적으로 텍스트와 영상이 결합된 멀티모달 데이터입니다. 이 멀티모달 데이터는 빅데이터 연구 및 거대 인공지능의 개발과 검증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는 만큼, 의료와 관련해서도 최대한 많은 기관에서 최대한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수집해야 합니다. 문제는 의료 분야에서는 적용 분야나 사용 기관에 따라 각기 다른 형식의 비정형 의료영상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영상의학 데이터는 의료용 디지털 영상 및 통신 표준을 따르지만, 디지털 병리학 영상과 생체신호 데이터 분야에서는 영상 표준이 아직 확립되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의료기관에서 환자의 데이터를 공유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에 저희 팀에서는 ‘세계 최초로’ 각기 다른 병원 전산 시스템을 사용하는 비정형 영상 데이터를 표준화하고 CDM(Common Data Model, 공통데이터모델) 기반 임상 자료와 결합하기 위한 프로젝트에 돌입했습니다. 서울대학교병원 본원과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 세브란스병원 등에서 다양한 종류의 의료영상 및 CDM 구축 경험이 풍부한 의료진이 모였고, 데이터 사이언스 및 거대언어모델 등의 역량을 갖춘 IT 전문가들도 합류해 과제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기존의 정형데이터인 CDM을 비정형 영상데이터 CDM으로 확장한다면 이미 CDM을 구축한 국내 약 60여 개 병원, EU와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 12억 명 환자 데이터를 통합할 수 있을 것입니다. CDM은 특히 데이터를 각 기관 내에 유지한 채 공유하고 협업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환자는 데이터 침해 가능성을 최소화한 상태에서 곳곳의 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고 연구자들은 즉각적인 연구 특히 딥러닝에 표준화된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 기관의 데이터를 표준화해 소수 환자군에 대한 의료영상 데이터 활용을 촉진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다방면에 활용하며 다양한 가치를 만들어낼 연구인 만큼, 반드시 성공해서 서울대학교병원그룹 연구의 선순환을 촉진하겠습니다.

게임하듯 즐겁게
정신건강을 확인한다

디지털 정신건강 스크리닝을 위한
강화학습 양상 파악 게임 및 인공 신경망 모델 개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왕성지 학생팀

저희는 강화학습을 게임과 정신건강 진단 사이의 중요한 징검다리로 삼았습니다. 강화학습은 인공지능이 주어진 상태에 대해 최적의 행동을 선택하도록 하는 학습 방법으로, 인간이 환경으로부터 정보를 받아들이고 학습하는 과정과 유사합니다. 한편 정신질환은 인간의 뇌 회로에서 특정 기능이 과도하거나 부족할 때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예를 들어 뇌의 도파민 회로 이상으로 ADHD(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가 발생하면 강화학습 양상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신질환 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아직 치료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첫째 온라인으로 정신건강을 확인해 치료 접근성 문제를 해결하고, 둘째 보물찾기 게임으로 강화학습 양상을 파악하기로 했습니다. 다양한 게임 중 보물찾기를 선택한 이유는 짧은 시간 내에 실험 참가자의 데이터를 풍부하게 얻을 수 있고 정형화된 강화학습 양상을 관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존 연구와의 차별점은 강화학습 양상을 설문지와 연계한 것과 강화학습 패턴 분석에 인공 신경망 모델을 접목한 것인데요. 인공신경망 모델은 대상을 예측하고 분석하는 데에 널리 사용되고 있는 기법으로 저희 연구에서는 게임 플레이 패턴을 통해 실험 참가자의 정신질환 여부를 예측하게 됩니다. 다만 예측에 성공하더라도 후속 연구를 위해서는 데이터 중 의미 있는 요소를 가려내야 하기에 다양한 RNN(Recurrent Neural Network, 순환신경망) 방식 등을 접목할 계획입니다.

다른 연구팀에 비해 실력이 부족한데도 연구공모에 선정되어 감사와 책임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습니다. 하지만 학부생의 강점인 과감함과 창의성을 충분히 발휘해 성공적으로 완수하겠습니다. 의과대학에서 배우는 모든 것이 의미 있고 흥미롭게 느껴지는 터라 질병의 근원을 탐구하는 기초의학자, 환자를 직접 치료하는 임상의사 등 다방면으로 진로를 가늠하고 있습니다. 이번 연구공모 선정을 계기로 창업의 길에도 관심이 생겼습니다. 배우는 동안 열심히 탐색하고 성실히 임해, 대한민국 의학 발전에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성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