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장 중입자치료센터 개원 준비 현황

암세포를 파괴하는 명사수, 중입자

2014년 4월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명사수들(Sharp shooters)’이라는 제목의 논문이 실렸다. 차세대 방사선 암 치료를 소개하며 수소 원자핵인 양성자와 헬륨·탄소를 비롯한 중입자를 ‘암세포를 파괴하는 날카로운 명사수’라고 표현한 것이다. 배경은 입자가속기(Cyclotron/Synchrotron, 싸이클로트론/싱크로트론)를 통해 가속된 양성자와 중입자의 물리적 특성인 브래그 피크(Bragg peak)다. [그림1]을 보면, 암세포에 가까워질수록 X선의 선량은 점차 감소하지만 양성자와 탄소이온(중입자)의 선량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입자치료로 통칭하는 양성자치료와 중입자치료에서는 바로 이 브래그 피크의 원리를 활용해 정상 조직에는 거의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암세포 DNA를 파괴한다. 덕분에 치료 효과는 크고 부작용은 적다. 그중 중입자치료는 양성자치료보다 더 강력하고 정밀하게 암세포 DNA를 타격한다[그림2]. 탄소 입자는 양성자보다 질량이 12배 무거워서 몸속을 통과할 때 양성자에 비해 직진성이 뛰어나다. 이는 종양 주변에 정상 장기가 가까이 있어도 정교하게 암을 공격할 수 있음을 뜻한다. 김경수 서울대학교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는 “중입자치료는 X선이나 양성자선에 비해 암세포 DNA에 집중적이고 회복하기 어려운 손상을 줄 수 있어 암세포 사멸에 좀 더 효과적입니다”라고 설명한다.

[그림1] 인체 내 깊이에 따른 방사선량 전달

[그림2] 방사선 유형별 암세포 DNA 파괴 양상

글로벌 암 치료의 대세로 떠오른 중입자치료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중입자치료센터의 수는 전 세계적으로도 15곳에 불과하다. 첨단 기술과 최고의 인력, 중입자치료시설을 위한 투자 등 갖춰야 할 요건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핵심은 강력한 자기장 속에서 입자를 가속시켜 큰 운동에너지를 발생시키는 입자가속기다. 헬륨과 탄소 이온 등을 입자가속기 안에서 약 7억km/h 속도까지 가속시켜야 몸속 깊은 곳에 있는 암세포를 타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고의 전문성을 갖춘 인력도 중요하다. 박종민 서울대학교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는 “중입자치료 전 종양의 정확한 위치를 확인해 치료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그러려면 중입자 선량을 정확히 계산할 수 있는 최첨단 치료계획장비 등은 물론 방사선종양학과 의료진과 의학물리학자 등의 전문성이 매우 중요합니다”라고 강조한다. 수천억 원에 달하는 설치 비용과 대규모 시설을 위한 공간 확보, 중입자치료 관련 데이터 부족 등도 확산의 장애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런데 최근 10년 사이 상황이 달라졌다. 1990년대 일본과 독일에서 시작한 중입자치료의 우수한 임상 데이터가 성숙 단계에 이르렀고, 일본에서는 2023년 육종암을 비롯하여, 간암·췌장암·전립선암에 대한 중입자치료가 국가 보험 제도 안에 편입되기에 이르렀다. 또한, 누워있는 환자를 360o 방향에서 치료할 수 있는 회전 갠트리의 소형화 등으로 장비가 보급되기에 좋은 여건도 형성됐다. 이에 일본에서만 치료센터가 7군데로 늘었고, 유럽에서는 독일 이외에 이탈리아·오스트리아에서도 활발히 치료를 시행하고 있으며, 중국과 대만에서도 중입자치료기를 도입하여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양성자치료기는 40여대 넘게 운영해왔지만 중입자치료센터는 없었다. 하지만 최근 미국 최고의 병원 중 하나로 평가받는 메이요클리닉(Mayo clinic)이 중입자치료기 도입을 결정해, 서울대학교병원과 비슷한 시기에 중입자치료를 시작할 예정이다. 국내에서는 2023년 연세의료원이 처음으로 중입자치료를 시작한 이래, 유수의 대학병원들이 중입자치료기 도입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

기장 중입자치료센터의 치료실 구성

[사진1] 인젝터

[사진2] 싱크로트론(입자가속기)

[사진3] 빔라인

[그림3] 고정빔 치료실

[사진4] 회전 갠트리

[그림4] 회전 갠트리 치료실

[그림3], [그림4]: 기장 중입자치료센터 치료실 예상도
[사진1]~[사진4] 출처: Yamagata University Hospital

미래의료 흐름 바꿀 기장 중입자치료센터의 청사진

서울대학교병원은 2027년 기장 중입자치료센터 개원을 예고하며 “암 치료기술 선도국가로 발돋움하는 데 이바지하겠다”라는 비전을 천명했다. 차별화된 입자치료로 암 치료와 연구의 새 흐름을 만들겠다는 의지다.

첫 번째 차별화 포인트는 최고의 인력이다. 실제로 기장 중입자치료센터에는 세계 최고의 전문성을 갖춘 방사선종양학과전문의와 의학물리학자, 경험이 풍부한 방사선치료기사와 간호사 등이 투입된다. 이를 통해 중입자치료에 적합한 환자를 선별한 후 철저한 치료 계획을 설계하고 시행하는 등 안전하고 효과적인 입자치료의 표본을 만들 것이다.

두 번째로는 탁월한 연구 역량을 꼽을 수 있다. 중입자치료는 기존의 X선이나 양성자치료에 비해 역사가 짧다. 따라서 중입자 선량에 따른 세포 반응 연구, 중입자치료의 이득이 큰 환자를 찾기 위한 노력, 이를 위한 치료 결과에 대한 임상 데이터를 축적하는 것이 중요하다. 서울대학교병원은 기장 중입자치료센터 개원에 앞서 해외 센터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며 연구 성과를 공유하고 있으며, 개원 후에도 임상 데이터를 철저히 분석해 유의미한 성과를 쌓을 것이다. 또, 연구용 빔라인과 탄소·헬륨 이온 외에 제3의 이온원을 별도로 설치해 의학적·생물학적 연구로 지평을 넓혀가겠다는 각오다.

▲ 부산시 기장군 동남권 방사선 의과학 산업단지에 위치한 서울대학교병원 기장 중입자치료센터

셋째는 세계 최초 기술 적용이다. 중입자치료에서는 선량률(단위 시간 동안 병변 부위에 전달되는 에너지 양)과 빔 조사야 크기가 치료 효율성을 좌우한다. 선량률은 부족하면 치료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빔 조사야 크기가 좁으면 환자가 자세를 여러 번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기장 중입자치료센터는 치료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기존 대비 선량률은 2배(4Gy/L/min), 빔 조사야 크기는 3배(30cm x 40cm) 뛰어난 최첨단 기기를 도입했다. 대부분 치료센터에서는 탄소만 가속하는 것과 달리, 헬륨을 가속할 수 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헬륨을 시작으로 다양한 이온선을 활용하는 멀티 이온선 치료 등 입자선치료의 저변을 넓히는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기장 중입자치료센터의 입지도 빼놓을 수 없는 포인트다. 현재까지 개설되었거나 개원을 예고한 대부분의 입자치료센터는 수도권에서만 운영될 예정이다. 반면 기장 중입자치료센터는 한반도 동남권에 자리함으로써, 지역간 의료격차 해소와 지역의료산업 발전 등의 견인차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우홍균 중입자가속기사업단장(암진료부원장)은 기장 중입자치료센터 개원의 의의를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기장 중입자치료센터의 목표와 비전은 국가중앙병원이자 연구중심병원인 서울대학교병원의 지향과 다르지 않습니다. 따라서 첫째 최상의 진료로 중입자치료를 희망하는 암 환자와 보호자의 의료복지를 향상시켜야 하겠지요. 이를 위해 세계 어느 곳과 견주어도 손색없을 시스템과 기술을 갖춰가고 있습니다. 연구중심병원의 자산, 기장 중입자치료센터의 첨단 기기를 활용해 중입자치료뿐 아니라 기초연구와 난치성 암 치료 연구 등에도 적극 나서겠습니다. 향후 연구용 빔 라인을 구축해 기장 중입자치료센터가 국가 입자기술 선진화에 기여하고, 궁극적으로는 입자기술을 통한 고부가가치 산업과 시너지를 창출하는 발판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장 중입자치료센터에 도입된 최첨단 기술

중입자치료에 대해 알려 드립니다

모든 암 환자가 중입자치료를 받을 수 있나요?

중입자치료도 결국 국소적으로 암을 치료하는 방사선치료의 일종입니다. 따라서 중입자치료의 대상 역시 X선을 이용한 방사선으로 치료받을 수 있는 환자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이미 여러 곳에 암이 전이되었거나 국소적으로 암을 치료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는 경우라면 중입자치료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모든 암에 입자치료를 적용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도 강조하고 싶습니다. 입자치료가 아닌 일반 방사선치료로도 충분한 경우도 많고, 입자치료의 이익이 크지 않은 환자도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기장 중입자치료센터에서는 중입자치료로 인한 이득이 뚜렷한 환자들을 잘 선별해서 최상의 결과를 이끌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계획입니다.

중입자치료 대상 암종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중입자치료는 기존 방사선치료가 잘 듣지 않고, 수술이나 항암화학요법·새로운 표적치료로 다루기 힘든 암종에 주로 시행되어왔습니다. 현재 중입자치료를 가장 많이 하고 있는 일본에서는 전립선암·육종암(뼈나 연부 조직에서 발생하는 암)·두경부암·폐암·췌장암·간암 순으로 치료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반면 유럽에서는 전립선암에 중입자치료를 적용하지 않고, 육종암 중 수술로 제거하기 힘든 부위에 있는 종양과 두경부암 중에서도 기존 방사선치료에 저항을 보이는 암종을 주로 중입자로 치료하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 같은 암종이라 해도 병기와 종양의 위치 등에 따라 중입자치료 적용 유무가 달라집니다. 이런 부분은 환자분들이 파악하시기 어려운 것들이지요. 그러니 현재 암 치료를 받고 계신 환자분들이라면 중입자치료에 대한 기대로 바로 병원을 옮기시기보다는 방사선종양학과 전문의와 상담을 통해 적절성 여부를 파악하시기 바랍니다.

치료 과정은 어떻게 되나요?

중입자치료를 처음 시작할 때 환자가 움직이지 않게 하는 고정 기구를 만듭니다. 이 고정 기구를 장착한 상태로 CT를 찍은 후, 방사선종양학과 전문의와 의학물리학자는 CT 영상을 토대로 가상 공간에서 환자에게 중입자를 쏠 위치를 설계합니다. 매우 정밀한 치료인 만큼, 중입자선이 종양을 1mm 이내로 정밀 타겟할 수 있도록 치료계획을 세웁니다. 중입자치료는 1회 평균 10~40분가량 소요됩니다. 실제 중입자를 쏘며 치료하는 시간은 1분 남짓으로, 대부분은 자세를 정확하게 잡는 데 할애합니다. 중입자치료의 전체 시행 횟수는 암종이나 환자 상태 등에 따라 다릅니다만, 기존의 X선이나 양성자치료에 비해 치료 횟수가 적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짧게는 단 하루, 1회 만에 치료가 끝나는 경우도 있고 길어도 4주를 넘기지 않습니다. 치료 과정이 끝나면 외래를 통해 피검사와 CT 촬영 등 전통적인 암 추적·관찰을 진행하게 됩니다.

통증이나 후유증이 없는 것이 사실인가요? 항암치료를 생략할 수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피부 절개나 외과적인 시술을 동반하지 않는 만큼, 치료 과정에서 통증은 거의 없습니다. 치료 이후의 부작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암세포만 정확히 조준해 타격하니 피부나 종양 주위 정상 조직 피해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덕분에 기존의 X선 치료에 비해 부작용이 적다는 임상 결과가 일관성 있게 보고되고 있습니다.

중입자치료도 국소치료의 일종이기 때문에, 항암치료가 가지는 역할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최근 여러 암종에서 면역항암제의 유효성이 입증되어 많이 쓰이고 있는데, 면역항암제를 쓰는 환자에서 국소적으로 중입자치료를 병용한다면 그 효과가 더 커질 가능성이 있어 외국에서는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기장 중입자치료센터 역시 다양한 임상상황에서 중입자치료의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는 임상시험을 적극적으로 진행할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