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 병동에 남은 고대와 중세 병원의 모습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신전이 병원 노릇을 했다. 아스클레피오스 신전이 대표적이다. 당시의 치료법은 목욕과 마사지 정도였지만, 의학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 문양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어느 날 아스클레피오스의 방에 뱀이 한 마리 들어왔고, 이에 놀란 그는 지팡이로 그 뱀을 쳐 죽였다. 그런데 잠시 후 또 한 마리의 뱀이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그가 다시 지팡이를 쳐 드는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새로 들어온 뱀은 약초를 입에 물고 있었고, 그것을 죽은 뱀의 몸에 붙이자 곧 뱀이 살아서 일어났다. 그것을 본 아스클레피오스가 약초의 중요성을 깨달았다는 전설 때문에 지금도 뱀이 지팡이를 휘감고 있는 문양이 의학의 상징으로 두루 사용되고 있다.

중세시대에는 성지순례자를 비롯하여 노인이나 가난한 사람, 부랑아들에게 숙식과 약을 제공하는 시설이 있었다. ‘아프고 병든 자여, 모두 내게로 오라’는 성경 말씀을 실제로 실현하기 위한 목적이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병원을 ‘하나님의 집(Hotel-Dieu)’이라고 불렀다. 성당에서 운영하는 곳이다보니 환자에게 약과 음식을 제공하며 보살피는 일은 주로 수녀들이 담당했다. 당시의 의료기술은 크게 발달하지 못하여 치료보다는 아픈 사람을 끝까지 보살피면서 편안하게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이 주된 일이었을 것이다. 마치 수녀복과도 비슷한 긴 원피스 형태의 간호사복은 여기서 유래한다. 초보적 의료행위를 하던 ‘하나님의 집’은 여러 시대를 지나오며 현재 호스피스 병동으로 그 흔적을 남겼다.

감염 차단을 위한 분산형 배치에서 병원 대형화에 대응하는 집중형 배치로

18세기 현미경의 발달로 인해 세균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질병의 진짜 원인은 감염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청결과 위생이 가장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면서 병원은 온통 새하얗게 변했다. 속옷과 식탁보, 손수건과 침대시트는 물론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옷도 모두 흰색으로 통일되었다. 본디 검정색 수녀복에서 유래한 간호사 복장이 흰색으로 바뀐 것도 그 즈음이었다. 청결을 유지하자면 조금이라도 더러워졌을 때 얼른 눈에 띄는 흰색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병원을 이루는 색과 함께 건축이나 공간 배치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감염의 개념을 모르던 중세에는 한 방에 여러 환자들이 뒤섞여 있었고, 하나의 침대에 환자 두 명이 누워 있는 일도 있었다. 의학의 발달과 함께 환자간 감염을 줄이고 치료의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각 병과별로 구분하기 시작했다. 내과, 외과,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등 진료과 별로 공간을 분리하거나 별도의 건물로 독립시킨 것이다. 건물의 가운데에 행정과 진료를 담당하는 중앙진료부를 두고 각 병동이 마치 손가락처럼 별개의 건물로 뻗어 나가는 이른바 ‘분산형 배치’로, 서울대학교병원 본관이 대표적인 예다. 처음 찾아온 사람들은 6개의 병동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내부구조가 미로처럼 복잡하게 느껴진다고들 하지만, 감염을 최소화하려는 시각이 반영되어 있다.

20세기말부터는 다시 공간 배치가 바뀌어 갔다. 의료장비가 점차 대형화, 고급화되면서 중앙진료부의 면적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렇듯 병원이 대형화됨에 따라 동선을 최소화하기 위한 집중형 병원이 등장했다. 주로 저층부에 중앙 진료부를 두고 고층부에 각 병동을 배치하는 형태, 바로 21세기 초반에 지어진 분당서울대학교병원이다.

건물이나 공간 배치 등과 함께 병원 실내 구성과 인테리어도 점차 달라지고 있다. 환자와 보호자 편의를 위한 상점들, 프랜차이즈 카페와 식당, 편의점 등은 흡사 번화가의 거리와 별반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이전에 비해 의료 접근성이 높아지면서 병원을 둘러싸고 있던 근엄한 기운도 많이 사라졌다. 심지어 어린 아이를 본능적으로 공포에 사로잡히게 했던 소독약 크레졸 냄새 대신 커피 향이 먼저 후각을 자극하는 일도 많다. 2024년 현재 병원은 일상의 여느 장소와 크게 동 떨어지지 않은 곳이 되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기술과 사회 변화에 따라 병원이라는 공간도 끊임없이 변모해갈 것이다. 그 과정에서 병원이 질병 치유가 아닌, 질병 예방을 위한 공간이 되기를 바라본다.

서윤영 건축칼럼니스트 철근과 콘크리트가 아닌, 말과 글로 집을 짓는 건축가. 건축사무소에 다니며 신문에 칼럼을 연재한 것이 계기가 되어 20년 동안 20여 권의 책을 지었다. 건축을 예술이나 공학이 아닌 인문학의 한 분야로 여기며, 사회 및 문화, 역사적 시각으로 건축을 다시 탐색 중이다. 대표작으로 『대중의 시대, 보통의 건축』, 『건축과 국가권력 이야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