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창욱 서울대학교병원 정보화실장

정리.편집실

인공지능 만난 전자의무기록
무엇을, 얼마나 바꾸게 될까?

60세 권 모 환자가 며칠 전부터 시작된 두통을 호소하며 병원에 방문했다. 의사는 가볍게 인사를 건넨 후 환자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확인하고 병력을 청취하기 시작했다.
두통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강도는 어느 정도인지, 지속적인지 아니면 간헐적으로 발생하는지, 두통을 악화 시킬 만한 요인이 있는지, 최근 들어 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적은 없는지 등 현재 상태부터 과거 병력과 복용 중인 약물까지 두루 살핀 것이다. 기본적인 신체 검진 중에는 환자 몸 상태에 대해 말로 설명하면서 반복해서 확인했 다. 그런데 갑자기 진료실 문이 열렸다

“교수님, 존(John)이라는 환자가 비아그라 재처방을 원하신다고 합니다.”
“이 환자분 진료가 끝난 후에 처방해 둘게요. 고맙습니다.”

의사는 권 모 씨에게 해프닝에 대해 사과부터 한 후, “타이레놀을 처방해 드릴 테니 500mg 한 알씩 하루 세 번 복용하세요. 2주 뒤 다시 만나 경과를 확인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환자가 나간 후 전자의무기록(Electronic Medical Record, EMR)을 열자, 권 모 씨와 나눈 대화에 기반한 외래 기록 초안이 완성되어 있었다. 특히 진료 도중 존(John)이라는 환자에 대해 간호사와 나눈 이야기는 제외된 채 권 모 환자에 대한 내용만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걸 보고 의사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다만 한 가지, 서술형으로 길게 작성된 점이 아쉬웠던 의사가 버튼 하나를 누르자 의무기록은 섹션별로 구분한 요 약 형태로 변경됐다. 덕분에 의사는 몇 가지 사소한 내용을 수정한 후 최종 서명을 했고 1분 만에 외래기록을 완성할 수 있었다.

위 내용은 미래의 진료실을 상상해서 작성한 것이 아니다. 지난 3월 11일부터 15일까지 미국 올랜도에서 개최된 HIMSS(Healthcare Information and Management Systems Society, 북미 최대의 의료정보 경영시스템 학회)에서 시연된 닥스(DAX, Dragon Ambient eXperience) 시스템의 현재 모습이다. 이 시스템을 개발한 것은 음성인식 인공지 능 전문 기업인 뉘앙스(Nuance Communication)라는 회사로, 2021년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이하 MS)의 AI 자회 사로 인수합병됐다. 이후 MS는 거대언어모델(Large Language Model, LLM)¹을 이용한 생성형 인공지능(Generative Artificial Intelligence)² 등을 의료에 접목하는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서울대학교병원 역시 2000년대 초반부터 전자의무기록(Electronic Medical Record, EMR) 도입에 적극 나서 왔다. 2004 년 베스트케어(BESTCare) 1.0을 개발했고 2016년에는 보다 고도화된 2.0 버전을 도입했다. 배곧서울대학교병원의 개원 을 고려하면, 새로운 IT기술을 적용해 다양한 요구사항을 해결할 3.0 버전을 천천히 준비해야 할 시기도 머지않았다. 새로운 버전 개발 준비 단계에서는 그간 축적된 데이터를 잘 활용하는 것은 물론, 일상에 빠르게 침투하고 있는 일반 인공 지능(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AGI)³의 활용 방안과 범위도 잘 고려해야 한다. 언어뿐 아니라 이미지와 소리, 동영 상까지 인지하는 멀티모달(Multi Modal)4 인공지능의 활용 가속화 역시 예의주시해야 할 부분이다.

  1. 거대언어모델(Large Language Model, LLM) : 대규모 언어 데이터를 학습해 문장 구조 문법, 의미 등을 파악하고 자연스러운 대화 형태로 상 호작용할 수 있는 인공지능 모델로, 오픈AI에서 개발한 챗GPT와 메타의 LLaMa 등이 대표적이다.
  2. 생성형 인공지능(Generative Artificial Intelligence) : 텍스트, 오디오, 이미지 등 기존 콘텐츠를 활용해 유사한 콘텐츠를 새롭게 만들어 내는 인공지능 모델. 기존 인공지능이 데이터의 패턴을 학습해 대상을 이해한 반면, 생성형 인공지능은 기존 데이터와 비교 학습을 통해 새로운 창 작물을 탄생시킬 수 있다.
  3. 일반 인공지능(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AGI) : 특정한 조건에서만 적용할 수 있는 현재의 인공지능과 달리, 모든 상황에 일반적으로 두루 적용할 수 있는 인공지능. 전문가들은 2030년에 일반 인공지능이 보편화상용화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4. 멀티모달(Multi Modal) : 인간이 사물을 받아들이는 방식과 동일하게, 시각과 청각을 비롯한 다양한 인터페이스를 통해 정보를 주고받는 것을 뜻한다.

핵심은 결국 ‘환자’다

올해 초에는 정보화실의 연간 활동 중 하나인 Beyond Excellence, SMART BESTCare 2.0+’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데이 터 기반 의사결정과 인공지능을 베스트케어 2.0에 잘 반영해 환자 안전·진료 효과·업무 효율 극대화 방안을 탐색하고 실제 업무에 반영하기 위해서다. 프로젝트는 정보화실에서 기획한 탑 다운(top-down) 프로그램과 서울대학교병원 교직원의 아이디어를 모집해 적용하는 바텀 업(bottom-up)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바텀 업 프로그램인 공모전 진행은 특히 의미가 컸다. 의사직·간호직·기술직·사무직까지 다양한 직군의 직원들이 폭발적인 관심을 나타내며 55건의 아이디어를 제출했기 때문이다. 그중 수술 스케줄을 입력하면 지난 1년간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수술 예정 시간을 자동으로 채우는 기능, 수술 비용 입력 시 해당 진단명과 수술명을 바탕으로 가장 많이 입력된 상위 코드 를 보여주는 기능 등은 베스트케어 2.0에 반영하기로 결정됐다. 이외에도 베스트케어 2.0에 적용할 수 있는 고도화된 일반 인공지능의 기능은 무궁무진할 것으로 기대된다.
먼저, 앞서 예로 든 음성인식을 바탕으로 하는 의무기록 작성, 특히 의무기록을 작성할 시간적·물리적 한계가 있는 응급실 에서의 자동화 의무기록 작성 기능이 개발되면 환자와 의사 모두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외래 진료 전, 지금까지의 기록 과 마지막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외래 기록지 초안을 작성하거나, 향후 계획을 제시하는 프로그램 개발도 기대된다. 실시 간 데이터를 바탕으로 약물의 중복투여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기능이나 아나필락시스(Anaphylaxis)와 같은 위중한 알러 지 반응을 막아주는 다양한 임상의사결정지원시스템 개발도 예상할 수 있다. 수술 전 임상 자료 및 의료영상 확인 및 수술 중 신체 신호와 수술 동영상을 바탕으로 저혈량성쇼크(Hypovolemic shock)나 대량 수혈 요구를 예측하는 기능, 수술 중 화면에 수술 가이드를 제시하거나 일부 수술의 보조를 직접 수행하는 인공지능 등 수술장에 적용할 수 있는 기술도 속속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언제나 강조해 왔듯 효율을 높이는 것이 기술 발전의 핵심은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환자다. 첨 단 기술 개발과 도입의 핵심은 환자의 안전을 극대화하고 치료 성적을 높여 환자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고 의료 서비스에 대한 환자 만족도를 높이는 것이다. 모두의 시선이 ‘디지털 의료’에 쏠린 지금, 서울대학교병원이 ‘따뜻한’이라는 단어에서 시선을 거둘 수 없는 이유다.

인간 의사 보조하는 의료용 AI

생성형 AI 열풍이 전 세계를 뒤흔들면서 의료계에도 관련 기술이 속속 도입되고 있다. 특히 진료기록 을 생성하는 기술은 의료진이 문서 관리 작업에 쓰는 시간을 줄여 환자 진료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 출처 : 아마존웹서비스(AWS)
    AWS헬스스크라이브(AWS HealthScribe)
    by 아마존웹서비스(AWS)

    생성형 AI를 사용해 환자의 진료 기록을 자동으로 작성하는 서비스. 음성 인식 기술을 기반으로 의료진과 환자 가 나눈 대화 내용을 실시간으로 필사·요약, 분석하는 기능도 탑재돼 있다. 헬스스크라이브는 ▲타임스탬프가 기재된 단계 별 상담 기록 제공 ▲화자 식별 ▲주관적·객관적 등 대화 기록 세분화 ▲메모 및 데이터 요약 ▲ 원본 기록 참조 ▲의료 용어 추출 등의 기능을 제공한다. 의사와 환자가 나눈 대화 중 중요 내용을 표시하는 기 능도 있다.

  • 출처 : 뉘앙스(Nuance)
    닥스 익스프레스(DAX Express)
    by 뉘앙스(Nuance)

    환자 진료 후 몇 초 안에 임상 기록의 초안을 생성, 의료진의 행정 부담을 줄이는 서비스. 대화 속에서 인사이 트를 추출하는 ‘앰비언트 AI’와 오픈AI의 GPT-4에 기반한다. 앰비언트 AI는 일상에 계속 존재하면서 영향을 주 는 AI 기술을 뜻하는 개념으로, 핵심은 음성 인터페이스다. MS의 AI 자회사인 뉘앙스는 의료진이 환자 데이터 를 관리하고 처리하며 복잡한 분석을 수행하고 결정을 내리는 행정 업무에 드는 시간을 줄이고, 더 많은 환자 를 치료하도록 지원하기 위해 이 서비스를 출시했다고 밝혔다.

  • 출처 : 구글(Google)
    메드팜(Med-PaLM)
    by 구글(Google) & 딥마인드(DeepMind)

    문서나 환자 건강 데이터를 요약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가, 의학적 질문에 답을 하는 AI 기반 챗봇. 메드팜은 실제 임상 의사의 답변과 92.6% 일치하는 답변을 내놓았고, 미국의 의사면허 모의시험에서는 인간 의사의 합 격 수준인 60%대 정답률 수준을 나타냈다. 특히 2023년 5월 공개된 메드팜2은 미국 의사면허 모의시험에서 86.5%의 정답률을 기록하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구글에서는 메드팜2가 건강 검진 문제에 대한 답변을 의사나 전문가 수준으로 제공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